뉴스&칼럼

 
작성일 : 10-12-30 12:13
객석 ‘풍수지리학’
 글쓴이 : 정동근 (14.♡.152.238)
조회 : 2,637  

'이 좌석 어떨까요?' 영화와는 달리 공연을 예매할 때는 작품 선택보다 좌석을 고르는 데 더 많은 시간과 계산이 필요하다. 영화도 영화관 구조와 좌석 배열에 따라 다르지만 좌석에 따라 작품 자체가 달리 느껴지진 않는다. 하지만 공연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작품을 보는 듯한 새로움을 느낄 수 있다. 우선 앞 사람의 앉은 키와 머리 크기는 바꿀 수 없는 게 현실. 뜬금없는 진동과 깜박이는 액정은 무지한 매너를 탓할 수밖에. 이런 안타까운 조,건 외엔 '경제적 능력'이 일차적인 조건이다. 전 좌석이 같은 가격인 영화관과는 달리 공연장 좌석엔 등급이 있기 때문이다. 이후의 선택은 '개인의 취향' '정보 활용력'에 달렸다. 그날의 캐스팅도 선택의 조건이 되지만 좌석 역시 '무한 반복 관람'의 주요한 이유다.

사이드 자리라도 무대 뒤 배우·스태프 보는 재미
2층 돌출좌석 첫째줄은 1층 VIP석보다도 넓은 시야
'빌리 엘리어트'오케스트라피트석은 티켓 전쟁터
배우의 '사랑의 총알'제스처 받을 수 있는 명당

▶'앙드레김 좌석'의 존재 이유
"이 분도 25만원 내고 여기 않으신 겁니까" "네?" "난 냈습니다. 당장 이것 데려가세요. 좌우 두 자리 포함 세 자리가 모두 제 자립니다. 저는 양쪽 팔걸이를 나 혼자 쓰고 싶거든요." '까도남(까칠한 도시 남자)' 티를 제대로 내주는 김주원(현빈)씨. 드라마 '시크릿가든'에서 오페라 공연장을 찾은 김주원은 옆자리의 여성이 자신의 옆자리에 가방을 올려놓자 쏘아 붙인다. 다음날, 공연은 어땠냐는 비서의 질문에 "집중을 못 했으니 다시 예매하라"는 그. 이번엔 아예 "한 줄을 다 예매하라"고 지시한다.

그 장면에서 떠오르는 누군가. 지난 8월 세상을 떠난 디자이너 앙드레 김이다. 공연의 가치를 알아보는 안목은 김주원과 같은 수준일지라도 '통큰 좌석' 구매의 활용에서는 큰 차이가 있다. 까칠한 남자 김주원과 달리 앙드레김은 자신의 팔걸이로 빈자리를 두지 않았다. 지인들에게 좌석을 선물했다. 지인들은 주로 외국대사관 관계자들. 그는 자신의 패션쇼뿐 아니라 공연장에서도 '민간외교사절' 역할을 톡톡히 했다. 좋은 작품을 공유하고 공감하는 기쁨을 즐긴 것이다. 베를린 필, 뉴욕 필 등 세계적인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 제일 앞줄엔 늘 앙드레김의 하얀 뒷모습이 보였다. 한 공연기획사의 C열 1번부터 12번까지는 늘 '앙드레김 좌석'이었다.

특히 성악과 오페라를 좋아한 앙드레김이 앞자리를 선호했던 이유가 있다. 음향의 질뿐 아니라 가수의 표정을 보며 제대로 된 감정 전달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성악과 오페라 공연뿐 아니라 실내악과 독주회도 역시 무조건 앞자리가 최고로 꼽힌다. 지난해 9월 빈필과 조수미가 함께한 슈퍼콘서트 역시 앞좌석에서 관람했다. 1부 공연에서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중 '아, 그이인가…언제나 자유라네'를 마치자 앙드레김은 조수미에게 직접 꽃다발을 건넸다. 더이상 조명이 끝나도 홀로 빛나던 앙드레김의 뒷모습을 공연장에서 볼 수는 없지만 그의 좌석에 대한 가치와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마음은 여전히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그 자리, 앉아본 사람만 안다='샤롯데 VIP 9열 오른쪽 사이드와 2층 1열 중 어디가 좋을까요' 'LG아트센터, A열 제일 오른쪽 사이드와 R석 1열 23번 중 어디가 낫나요'
조금 더 구체적인 질문도 나온다. '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 달타냥을 보려면 왼쪽으로 가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저는 아라미스를 보고 싶은데 아라미스는 동선이 오른쪽이더라고요. 그래도 3열 VIP석이 4열 R석보다 공연을 보기에 나을까요.' 작품을 고르는 것보다 좌석 선택이 더 고민이다. 같은 돈을 주고라면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서 보고 싶은 것이 공연장을 찾는 이들의 욕심. 같은 가격의 VIP석, R석, S석, A석이라고 해도 그 속에 명당이 있다.

사이드라고 해도 작품에 따라 측면에서 보면 무대와 뒤편을 오가는 배우와 스태프들의 바쁜 움직임까지 볼 수 있다. 2층이라도 무대 쪽으로 돌출해 있는 좌석이라면 첫째줄을 건지면 옆으로 치우친 VIP석보다 더 제대로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LG아트센터의 '빌리 엘리어트'는 티켓을 오픈하면 특이하게 가장 빠른 시간 내에 매진되는 좌석은 오케스트라피트석(OP석)이다. 제작사 매지스텔라 관계자는 "OP석 중에서도 1막 'Expressing Yourself' 마지막 장면에서 마이클이 관객에게 일명 '사랑의 총알' '윙크' '전화해'라는 제스처를 던지는 곳인 OP석 B열 13, 14, 15번 좌석은 '티켓 전쟁'을 방불케 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배우들의 '객석 난입'으로 '선택받은 자리'가 되기도 한다. 충무아트홀에서 공연 중인 '삼총사'의 경우 1열 왼쪽 부근은 달타냥의 장미를 받을 수 있는 자리, 오른쪽 복도 쪽은 객석 뒤에서 등장하는 달타냥의 뒷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좌석 왼편에 자리를 잡고 몸을 앞쪽으로 내미는 제스처를 통해 달타냥의 5초간 이마 키스를 받을 수 있는 기회도 얻을 수 있다. 아토스가 달타냥의 용기 테스트를 하는 장면을 노리면 된다. 티켓 가격이나 배우와의 접촉을 떠나 좌석의 질을 따진다면 대극장 가장 앞열은 좌석의 배치나 무대의 높이 등에 따라 오히려 시야가 제한될 수 있다. 따라서 1층 객석 중간쯤이 가장 좋은 자리로 꼽힌다. 위를 올려다보느라 목에 무리가 가고 배우들의 발이 잘 보이지 않는 답답함을 참고라도 배우의 살아있는 표정이나 흐르는 땀방울까지 보고 싶다면 오케스트라 피트석을 포함한 앞 1, 2열까지를 예매하는 것이 좋다. 2층이나 3층에서 무대 전체를 한번 본 후 조금씩 전진해서 같은 작품을 반복해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베르테르 눈물석·그리스 작업석…특별한 좌석엔 특별한 이름이 있다
그저 '좋은 자리'가 아니라 제작사 측에서 아예 좌석에 이름을 붙인 지정석으로 '특별한 좌석'을 만들기도 한다. 미국 대통령을 암살하거나 암살을 시도했던 9명의 이야기인 뮤지컬 '어쌔신'엔 '매킨리석'이 있다. 9명의 배우들은 무대 조명이 비추는 '매킨리석' 관객과 차례로 악수를 나눈다. 송창의와 박건형이 더블캐스팅됐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엔 '베르테르 눈물석'이 있었다. 롯데를 사랑했지만 이룰 수 없는 사랑 앞에서 좌절하는 베르테르의 눈물을 아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좌석이다. 무대가 가까워도 약간의 시야가 방해되는 좌석이지만 '눈물석'이란 이름을 붙여 S석으로 8만원에 판매하면서 인기를 끌었다.

뮤지컬 '그리스'엔 '작업석'이 있다. 무대 중앙 블록의 세 번째 열 왼쪽 좌석으로 바람둥이 데니는 여학생들에게 작업 거는 장면에서 이곳으로 다가온다. 이밖에 특별석의 이름을 별도로 붙이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극의 일부가 되는 좌석도 있다. 현재 공연 중인 뮤지컬 중 '콘보이쇼'에서는 가운데 블록 왼쪽 통로 쪽으로 3, 4열 정도에 자리를 잡으면 작품 속 인질극의 피해자로 극에 참여할 수 있다. 뮤지컬로 만들어진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에서는 무대와 2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가장 앞줄이 주요 좌석이다. 사라 역의 차수정이 자신에게 접근하는 남자에게 콧방귀를 끼며 "이 정도 남자라면 몰라"라는 대사와 함께 그 열의 한 남자 관객 무릎에 앉는 장면이 있기 때문이다.

헤럴드경제 2010.12.30 윤정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