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칼럼

 
작성일 : 12-01-25 16:06
나의 남편 소크라테스에게..크산티페가
 글쓴이 : 정동근 (220.♡.246.18)
조회 : 1,713  
사랑하는 나의 남편 소크라테스에게

독이 든 잔을 마시고 죽어가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네요.
제가 그 잔을 마시지 말라고 고함을 지르고 엉엉울자, 당신은 제자를 시켜 저를 밖으로
내쫓았지요. 그때 곁에 있어주지 못해 너무나 마음이 아픕니다.

세상사람들은 한결같이 저를 악처라고 하네요.
당신이 차라리 석공이었다면 열심히 돌을 다듬어서 아들 셋을 잘 키울 생각만 할텐데, 당신은 그러지 못했어요. 일에는 관심이 없고  날마다 사람들과 철학을 논한답시고 거리를 싸돌아 다녔잖아요.

물론 다른 소피스트처럼 돈을 받고 가르치는 일을 했다면 저도 당신을 충분히 이해했을 거예요. 하지만 당신은 늘 공짜로 지식과 지혜를 팔았고, 또 잘난척만 했지요. 그런 당신의 모습이 제 눈에는 그저 한심한 백수건달처럼 보였답니다. 아이들은 자꾸먼 커가는데, 먹을 것은 없고.. 저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찼어요.

어느날 결혼을 앞둔 청년이 "결혼을 하는 게 좋을까요? 하지 않는 게 좋을까요?"라고 질문을 했을 때, 당신은 "결혼을 하는 게 좋다. 좋은 아내를 만나면 행복해질테고, 나쁜 아내를 만나면 철학자가 될테니까!" 라고 말했지요. 저는 그후로 진짜 악처가 되어버렸답니다.

제가 화를 속으로 삭히는 성격이 아니라 늘 일방적으로 큰소리를 질렀지요.
그때마다 당신은 능글거리며 실실 웃기만 하면서,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어요.
그런 당신이 너무 미워서 어느날은 구정물을 잔뜩 당신 머리에 부어버렸지요.
그런데도 당신은 미소를 띄우며 "천둥이 친 다음에는 비가 오는 법이지, 이게 바로 자연의 진리라네~" 라고 말했지요. 사실 그런 짓을 하고 너무 미안했답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구정물이고 자존심이 생명이었던 저는 결국 사과를 못했답니다.
지금 생각하면 당신의 깊은 지혜를 헤아리지 못하고, 가정만 돌보기를 바랐던 저의 생각이 짧았던 것 같아요.

무슨 일이 있어도 세 아들은 열심히 키울거예요. 그래서 당신처럼 지혜롭고, 많은 이들이 존경하는 학자로 키우겠어요. 하지만 가정과 아내를 생각하는 마음도 같이 갖게 만들겠어요. 다시는 저와같은 악처를 만들면 안되잖아요.

당신을 다시 만날날을 기다리며
크산티페가

<플라톤의 국가> 김영사 출판
이 책은 만화책인데 정말 잘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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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날 날을 기다린다면 남은 생을 혼자 살겠다는 뜻입니다.
부부간의 인연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뭔가가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전생에 그 원인이 만들어진 것을 업이라고 합니다.
현생에서 살아온 날들이, 살아 갈 날들의 업이 되기도 합니다.

서로 그리워 하면서도 평생을 헤어져 사는 부부
같이 살면서도 정말 징그럽게 싸우는 부부
소가 닭보듯 같이 살면서도 전혀 관심이 없는 부부

세상은 참 편해졌습니다.
몇달 걸려 부산에 있는 연인에게 인편으로 편지를 보냈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간단히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면 됩니다.
그렇다하여 그 속도만큼 둘의 사이가 빠르게 발전하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문명이 발달해도 인간관계에서 만들어지는 여러가지 문제들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저는 소크라테스의 악처 크산티페는 소크라테스 스스로가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다른 여자들은 소크라테스의 그런 행동들에 대해 전혀 다르게 반응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내 복이 많은 남자를 구하라!" "남편 복이 많은 아내를 얻어라!"
스스로의 복으로 이 남자와, 또 이 여자와 사는 것입니다.
이 남자 때문에 내가 이렇게 고생하면서 사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
자신에게 더 겸손해집니다.

도저히 극복하지 못할 것들이 세상에는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풍수로 환경을 쾌적하게 만들고 열심히 노력하면 어느 정도는 개선이 되겠지만
그래도 한계는 분명히 있습니다.
그냥 책을 보다가 문득 몇자 적어봅니다.

2012.1.25  정 동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