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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5-04-07 10:27
'명당'에서 살·고·싶·다
 글쓴이 : 관리자 (211.♡.136.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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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웰빙' 풍수인테리어
'명당'에서 살·고·싶·다
 2004.03.15 (월)  세계일보

지난 9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고층 회색 빌딩 숲 사이로 풍수가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방문 목적이 뭐죠”라며 깐깐한 경비업체 직원이 가로막는다. 풍수가는 얼버무리고 한바탕 승강이가 벌어진다.

그가 어렵게 찾은 곳은 H사 사장 집. 안방에서 집 설계도를 펼쳤다. 패철(佩鐵:명당을 찾을 때 쓰이는 일종의 나침반)을 꺼내들고 메모지에 뭔가를 써내려간다. ‘갑묘을방(甲卯乙方)이니 양목(陽木) 동(東)이요, 병오정방(丙午丁方)이니 음(陰)이다….’ 잠시 후 감을 잡았다는 듯 안주인 이모(59)씨에게 한마디 툭 던진다. “안방 침대를 왼쪽으로 2m 가량 옮기세요.”

풍수가 안방으로 들어왔다. 산과 물 그리고 인간의 조화만을 고집하기에 많은 것이 변한 탓이다. ‘좌청룡 우백호’(左靑龍 右白虎)는 산이 아니라 집이다.

대상은 바뀌지만 음양오행론을 바탕에 둔 원리는 매한가지다. 명당은 안방, 부엌 그리고 서재다. 빼어난 산천의 형세를 보는 눈을 빌려 침대 소파 등 소품의 위치를 고친다.

- 무엇이 침대를 옮겼을까.

H사장 집의 ‘침대 자리’(?)를 봐준 풍수가는 대동풍수지리학회 회장이자 이기풍수론 대가인 고제희씨. 산줄기와 물줄기를 쏘다니는 그를 가정집 안방으로 불러들인 것은 무엇일까.

최근 우리나라 풍수는 새로운 도전을 맞고 있다. 화장률이 50%대에 육박하는 등 장묘문화가 급속히 바뀌는 바람에 조상 묏자리를 점지하는 전통 풍수의 수요가 급격히 줄고 있는 것.

그런데도 복을 바라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하늘이 정해준 운명을 자연과의 조화를 통해 극복하고자 하는 풍수에 대한 ‘욕망’은 커질지언정 줄지 않는다.

이 같은 바람은 풍수의 또 다른 축인 양택풍수(陽宅風水)와 만나 ‘풍수인테리어’라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다. 양택풍수는 묏자리를 보는 음택풍수(陰宅風水)와 달리 집터와 방을 조화롭게 배치해 발복(發福)을 꾀하는 것이다.

현대판 ‘풍수’인 풍수인테리어는 대형빌딩의 신축, 주택과 사무실의 공간배치, 실내 인테리어까지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다. 특히 ‘자연’과 ‘나’의 조화를 중시하며 풍요로운 삶을 추구하는 웰빙 트렌드와 맞물려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 방안으로 옮겨진 풍수(風水)

2002년부터 풍수인테리어 사업을 하고 있는 행운풍수인테리어 김경훈 사장은 최근 부쩍 바빠졌다.
2년 전만 해도 한 달에 2∼3건에 불과했던 인테리어 의뢰가 올해 들어 10건 이상 늘었다. 의뢰인 연령대도 젊어졌다. 신혼부부가 대부분이다. 이왕 집을 예쁘게 꾸밀 참이라면 ‘복’과 ‘건강’을 함께 가져오고 싶어한다.

다들 나름의 사연이 있다. 서울 상암동에 내집 마련을 앞두고 있는 ‘새댁’ 강모(30·여)씨는 결혼 이후 4차례 연이은 유산으로 건강이 나빠졌다. 새집 인테리어에서 김씨는 금(金)의 기운을 타고난 자신의 건강을 위해 부엌 입구를 서남향으로 냈다. 또한 금과 상생(相生)의 관계에 있는 토(土), 즉 황토빛으로 벽을 칠했다.

지난해 아이들 교육문제로 잦은 부부싸움을 했다는 김모(45)씨도 지난해 12월 분당의 한 아파트로 이사하며 풍수인테리어로 집을 꾸몄다. 부부만의 공간인 ‘안방’을 푸근한 분위기로 장식하고, 총명한 기운이 충만한 곳을 아이들 공부방으로 뒀다.

김씨는 “주변에서 ‘미신’을 믿느냐고 질타하기도 하지만, 집 전체가 조화로운 분위기를 연출해 가족들이 모두 기뻐하는 것으로 만족한다”고 흐뭇해했다.

-풍수인테리어, 생활의 지혜로

최근 ‘풍수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관련 서적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사랑을 부르는 풍수인테리어’ ‘부자되는 풍수인테리어’ 등 제목도 솔깃하다. 하지만 이 같은 책을 읽노라면 ‘일출 그림을 동쪽에 걸면 사랑이 불같이 타오른다’ ‘북방에 금고를 두면 돈을 번다’는 등의 대목에 와서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일부 인테리어 전문가들은 검증되지 않은 원칙에 대한 맹신을 경계한다. 이를테면 양택풍수에서는 ‘화장실의 습하고 탁한 기운이 서방의 기운을 깨뜨려 젊은 여자로 인한 재물의 손실과 가정 불화가 생기고, 현관에서 화장실과 변기가 바로 보이면 식구들이 신장 비뇨기 계통의 질병을 앓는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현대 주거공간에서 이를 그대로 적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지금의 화장실은 재래식의 불결한 공간이 아니라 오히려 위생적 공간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풍수 전문가들 역시 ‘고지식한’ 해석은 풍수 본연의 취지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말한다. 현대 주거공간을 고려해 주술적인 측면을 융통성 있게 풀이하면 수천년간 조상의 지혜가 쌓인 풍수가 훌륭한 인테리어 지침으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이다.

풍수인테리어 건축가 정동근씨는 “현대의 생활풍수는 주변환경과의 원만한 조화를 위해 주역, 기, 오행 등 동양의 고대철학, 체계적으로 정립된 현대의 지리학과 건축학, 인테리어 지식을 집대성한 것”이라며 “이를 통해 자연환경, 인공적인 환경 그리고 인간이 서로 조화를 이룬 쾌적한 집을 꾸밀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